푸틴 ‘지각 소동’에 묻힌 것
이리나 코르군 한국외대 HK연구교수 | 제350호 | 20131124 입력
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라는 언어학자가 있었다. 러시아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슬라브주의자로 말년엔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대학교수로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. 그의 조상인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는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러시아 최초의 민주 혁명이라고 할 ‘데카브리스트의 난’(1825년 발발)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. 최근 방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막한 서울 롯데호텔 앞 동상의 주인공인 시인 푸시킨 역시 데카브리스트(러시아어로 12월을 의미하는 ‘데카브리’에서 유래)와 관계가 깊다. 데카브리스트 지도자들 중 많은 이들이 푸시킨의 친구였기 때문이다.
푸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보며 언어학자 트루베츠코이가 떠오른 이유는 또 있다. 그가 ‘유라시아주의’라는 개념을 만든 인물 가운데 한 명이어서다. 20세기 초반 자신이 만든 개념이 훗날 경제·대외 정책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, 나아가 박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 정부의 주요 정책 개념 중 하나가 되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을까. 트루베츠코이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유라시아 국가들이 통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, 내적 경제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봤다. 최근 푸틴 대통령의 방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. 아니,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.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한을 통해 러시아가 유라시아 내에서 더 넓은 틀의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명했다.
한국 내에선 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. 그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지도자의 ‘지각’과 늦은 오후로 미뤄진 오찬 시간에 집중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. 솔직히 말해 조금 이상하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. 마치 러시아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이 단지 제 시간에 시작되는 오찬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. 짧은 시간에 모두 소화해낸 빡빡한 일정의 다양한 행사들은 지각 논란에 가려져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.
이를 두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. 첫째, 일반 대중이 공식 행사의 상세한 부분까지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. 외교는 사건과 사실에 대해 현 상황이 요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섬세한 예술이다. 둘째,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한 두 나라 국민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.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일반 대중은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관계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. 전략적 동반자관계라는 것은 외교적 차원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정치적 대화를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. 그러나 현실은, 좀 부드럽게 표현하자면, 그런 위상에 부합하지 못한다. 푸틴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열린 다양한 행사에서 양국 참가자들은 이제 러

